제 6장. 사회를 알아가기 위한 안내서

우리는 그들을 페미나치라고 부른다. 페미니즘은 왜 파시즘화 되는가.

프로여행러 2018. 12. 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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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번 글에 이어서 오랜만에 페미니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럴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지난 페미니즘 글을 쓴 뒤로도 페미니즘의 위상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페미니즘에 대한 사건사고와 글들을 보는 와중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과거 파시즘의 형성과정이 현재 페미니즘이 자리잡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지금도 페미나치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파시즘과의 유사성은 어느정도 대중에게 인식되고 있긴 합니다만 페미니즘과 파시즘의 연관성에 대한 기사나 연구는 찾기 힘든게 현실입니다.



해외커뮤니티 출처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현재의 페미니즘과 PC가 어떤점에서 파시즘과 공산주의와 비슷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전글에서 페미니즘의 역사와 현재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언급했으니 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http://lifetravelers-guide.tistory.com/137?category=651230


 - 페미나치의 유래와 정의


최근들어 페미나치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긴 하지만 놀랍게도 페미나치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그것도 거의 30년 전인 1992년에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이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러시 림보라는 미국의 극보수주의 논객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정규재 정도 되는 인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러시 림보


이 사람이 페미나치라는 용어를 쓴 것은 1992년  자신의 저서에서 처음 쓴 것인데, 처음에 이 용어를 쓴 대상은 다름아닌 낙태폐지론자들이었습니다. 


​당시 그 책에서 언급한 내용을 보면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중에서 가능한한 많은 낙태를 추구하려는 사람들' 이라는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영문 위키 feminazi). 즉, 첫 사용 용래는 낙태폐지론자들의 비판하기 위해 썼던 것이죠.


​사실 이 인물도 그리 정상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이라고 보기는 힘든게 국내에 여혐이라 불리는건 약과일정도로 극단적인 여자혐오주의자이며 피임약을 구매하는 여자들을 창녀취급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올해 벌어진 미국 학교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유일한 해결책은 학생들이 총기를 학교에 들고 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상당히 치우쳐지고 과격한 발언을 일삼는 사람입니다. 오죽하면 이러한 성향이 지나쳐서 보수정당인 공화당에서도 거리를 둘 정도입니다.


​이처럼 처음에 사용될 당시 용어는 정치적 성향이 치우친 사람이 만든 용어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극단적인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을 비하적으로 통칭하는 말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 파시즘과 페미니즘은 무엇이 유사한가.


물론 저 페미나치라는 용어는 처음 사용 당시부터 논란이 됬습니다. 저 표현자체가 멸칭(비하하여 부르는 말)이기도 하고, 애초에 서구권에서 '나치'라는 이야기는 금기시 되는 표현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페미나치라는 용어가 쓰이는 이유는 실제 파시즘과의 동등성 때문입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페미니즘은 정상적인 '일부'의 페미니즘이 아닌 현재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레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하겠습니다.



파시즘에 대해서 설명하고 넘어가자면  국수주의적·권위주의적·반공적인 정치적 주의 및 운동을 말합니다. 파시즘은 이탈리아(무솔리니), 나치즘은 독일(히틀러)에서 나온 개념이라 하위 분류로 분리하기도 하지만 여기선 통칭해서 파시즘이라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파시즘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전체주의와 차별에 있습니다. 물론 초기 파시즘의 경우 국가주의에 기반한 부분도 있지만 현재의 네오나치즘, 그러니까 신나치주의의 경우는 이 국가주의가 어느정도 빠진 상태입니다. 대신에 인종에 대한 차별이 주축 사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집단(나치당, 파시즘 정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고 이 집단을 중심으로 결집하며 자신들의 민족을 제외한 차별(대표적으로 외국인 차별)을 자행합니다. 이러한 점은 현재의 페미니즘에 대입해서 보면 자신들의 집단(워마드, 메갈)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자신들을 제외한 남성들에 대한 차별을 주장한다는 유사성이 있습니다.


​즉 페미나치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사용되는 이유는 이러한 페미니즘의 성향이 큰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여기에 자신들이 원하는 혜택을 받고 남자가 역차별 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뷔페미니즘 역시 이러한 비판에 힘을 더하고 있습니다. 


- 페니미즘은 왜 파시즘화 되는가.


​현재 페미니즘을 말하면 일반적으로 래디컬 페미니즘을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후 본문에는 페미니즘 = 레디컬 페미니즘으로 칭하도록 하겠습니다. 페미니즘의 불행은 남녀간의 평등한 기회만을 요구하던 자유주의 페미니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 아닌 극단주의적인 래디컬 페미니즘이 현 페미니즘의 주류가 되었다는데에 있습니다.


현재의 래디컬 페미니즘의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성별로 지목하는데에 있습니다. 즉, 모든문제는 남성에게 있고 이로 인해서 여성은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죠. 그것이 설령 여성이 잘못했거나 성별문제가 아닌 부분에서도 말이죠. 이미 위에서 언급했던 '차별에 대한 정당화'가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페미니즘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에게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것 보다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는게 더 편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파시즘과 페미니즘의 유사성이 나오는데 파시즘의 대표격인 나치의 성장과정과 비교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모르는 사실중 하나인데, 나치의 경우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잡은 케이스입니다. 같은 성향인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로마진군'이라 불리우는 쿠데타를 통해서 집권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나치의 경우 파시즘과 비슷하게 세계대공황으로 인해 독일경제가 큰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독일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일은 연합국(영국, 프랑스, 미국 등)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내야 했습니다. 물론 이후에 어느정도 경감했지만 이 배상금은 전쟁을 치룬지 얼마 안된 독일에게는 큰 부담이었고, 결국 세계대공황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독일은 초인플레이션 현상을 겪게됩니다. 


​이런상황속에서 독일인들의 외부 세력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하게 되었고, 나치당은 이러한 독일국민들의 욕구를 풀어주는 창구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또다른 신흥세력이었던 독일 공산당에 대한 반대 역시 독일 내 우파를 결집시키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여론을 끌어모은 것이 나치가 독일을 장악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페미니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평등을 주장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 대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한 이유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하나하나 구분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남녀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기회의 동일을 주장하거나(자유주의 페미니즘) 여성 뿐 아니라 성소수자나 타종교의 인권까지도 보호하는 것(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은 대중의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당하는 피해는 자신들과 연관이 없기 때문이죠. 반면 래디컬 페미니즘은 아주 효과적이면서 간략한 구호를 내세웁니다.


​'모든 문제는 남자들과 남자들이 만든 체제에 있다'


원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바는 모든 양성간의 불평등의 문제로 남자들이 만든 체제, 즉 가부장제를 말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상태만 놓고 봤을 때 현재 대다수의  페미니스트들은 저런식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사례인 이수역 폭행사건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수역 폭행사건은 현재는 거의 종결난 사건입니다. 여성측에서 먼저 시비를 걸었고, 폭행은 없었다는 것으로 결론지어가는 상황인데 이 사건이 처음 터지고 나서 나왔던 반응들입니다.


사건 자체만 뜯어놓고 보면 '술집에서 일어난 폭행 사고'수준입니다. 하지만 피해자 측에서 자신들의 임의로 사건을 재구성한 글이 네이트판에 올라오면서 사건은 급속도로 대중에 알려지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기도 전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무려 36만명이나 동의를 하였고, 소위말하는 페미니스트 기자들이 편향적인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다는데에 있습니다. 이 단체적인 광기라고 할 수 밖에 없는 행동의 근간에는 '모든 문제는 남자가 원인'이라는 그릇된 사고에서 부터 시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피해자(라고 하기에도 지금은 애매하지만)가 여자이고,  피의자가 남자면 무조건 남자가 잘못했다는 정신나간 논리입니다. 그리고 앞서 이수역사건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러한 태도가 단순히 소수의 의견이 아닌 엄청난 인원이 믿고있는 상황이고, 또 언론과 정치권의 비호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건 심각한 부분입니다. 나치 역시 엄연히 독일 국민 다수의 비호를 받은 정치세력이었기 때문이죠.


- 뷔페미니즘. 그 어떤것도 없는 최악의 페미니즘.



이러한 현상은 뷔페미니즘과 연관되어 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뷔페미니즘이란 뷔페처럼 책임은 거부하고 혜택만 누리려는 페미니스트들을 비꼬는 말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래디컬 페미니즘의 원류, 즉 남성 중심의 체제가 문제이고 그걸 깨고 평등을 만들자는 취지는 여기에 비해서는 양반입니다. 이 뷔페미니즘이 최악인 것은 여권신장이나 소수자 인권 등 정말로 페미니즘이 필요한 역할은 외면한 채로 오로지 자신들의 이득만 취하려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대다수의 페미니스트들이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이끄는 페미니스트들 역시 이러한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언뜻보기에 이들이 행하는 일들은 여자들 모두의 혜택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군대 문제를 예시로 들면, 이러한 뷔페미니스트들이 여자들의 국방의 의무를 막음으로 인해서 여자들이 이러한 문제에 자유로울수 있다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행위들이 피해자들, 즉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남성들이 생기고 그로인해 여성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행위들은 결코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남자들을 다 없애고 여자들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 이야기들을 보면 이들이 원하는 세상은 여자들이 남자들을 하등생물처럼 부리는 세상인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농담같지도 않은 이들의 목표는 생각보다 현실성이 있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 페미국가로 가는 한국. 염려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현재 국내의 페미니즘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정치권의 비호를 받고있다는 점과 다수의 언론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된 비판을 하는 언론도 없다는 것이죠.


​이수역 사건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소위 말하는 진보에 해당하는 신문사들은 남자들을 성토하고 여혐을 성토하는 기사를 내놓을지언정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제대로된 비판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수역 사건이 터진 직후 남자들이 이유없이 여자를 폭행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쓰더니,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자 이제는 이러한 남녀간의 갈등이 문제라는 식으로 물타기를 하는 식입니다.


​https://news.v.daum.net/v/2018111518260411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11241024001


이러한 의견이 다수가 된다면 국내 정치에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정당이 다수당이 되고, 심지어 래디컬 페미니즘에 입각한 남성차별을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아미 이 글을 보시면서 '설마 그러겠어?'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페미니즘은 아니지만 이러한 혐오감정을 이용해서 정권을 잡는 사례가 전 세계저으로 상당히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입니다.



미국 대선을 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기간 내내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미렸으며, 심지어 개표직전에서의 출구조사에서도 밀렸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선거에서 이겼고, 심지어 미국의 상하원까지 공화당이 점령하는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트럼프의 승리는 다수지만 주목받지 못한 목소리(러스트벨트)를 끌어들인 것이 승리의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그리고 반이민정책 등 미국인 대다수들이 원하는 방향을 끌어낸 것 역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비단 트럼프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영국의 EU 탈퇴인 브렉시트, 반이민 정책을 표방하는 프랑스의 마린 르펜의 돌풍 등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반이민, 반외국인의 기치를 든 정당들의 성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공공의 적을 만들어 공격하는 방식인데, 이민자 문제가 심각한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적중한 것입니다. 이러한 적을 만드는 전략은 정치권에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져온 전략입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과거 지역감정을 극화시킨 지역차별 전략이 최근에는 일베 등으로 이어지면서 유지된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전조는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여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녹색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던 신지예 후보입니다.



신지예 후보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서울시장후보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성소수자 문제, 성평등, 페미니즘 문제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총 82,874표를 얻어 4위에 올랐습니다. 참고로 이 수치는 국회에 있는 진보정당인 정의당 소속 김종민 후보보다도 많은 수치이며 지난 총선에서 녹색당이 받았던  득표수에 살짝 못미치는 수준입니다. 단순히 페미니스트들이 주요 정치세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근거없는 걱정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2020년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페미니즘을 표방한 국회의원들이 대거 당선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애초에 지금의 정치권에서도 여야 막론하고 페미를 위한 정치를 표방하고 있는 상황이니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이러한 상황이 온다면 최악의 경우 대한민국은 남성의 인권이 짓밟히는 공약을 내세운 대통령이 나올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20대와 30대 남성들은 반발하고 있고, 이런 이유로 대통령 지지율까지 떨어지는 상황이지만(12월 2주차 20대 남성 지지율 29.4%. 연령대별 최저)  안타깝게도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미약한 상황입니다. 이들이 현재 페미의 피해자인데, 이들이 결집할 가능성은 지금 상태로 봤을 때는 상당히 낮아보입니다.


​실제로 정치인들에게 하루만에 36만명이나 결집시킬수 있는 화력(이수역 사건 국민청원)은 매력적인 부분일 것입니다. 전국민적인 공분을 샀던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국민청원이 하루동안 20여만명이 참여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보고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이 있다면(특히 남성) 이용할 생각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남자들의 인권적으로도 그렇지만 페미니즘은 결코 남성 페미니스트들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페미에 온건적인 모습을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게 현재 페미니즘의 모습입니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페미를 감쌌던 정치인들 역시 파멸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분명 초창기 페미니스트들이 원했던 세상은 이런 세상이 아니었을겁니다. 시대가 지나면서 페미니즘은 변질되었고, 이제는 정말 기회의 평등과 성폭력, 가정폭력 등의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점점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진정한 평등을 위해서, 그리고 진정한 여권 신장을 위해서는 페미나치는 근절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이러한 페미니즘이 근절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결국은 여성들이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이득을 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유리해지기 때문에 이런 말도안되는 주장들에 침묵한다면, 결국 마지막에 피해를 보는 것은 여성들 자신일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책임이 없는 권리는 없었으며 그 책임없는 권리와 모든 문제를 상대방의 탓으로 돌렸던 나치 치하의 독일이 어떠한 결말을 맞이했는지를 상기한다면, 그리고 그 밑에서 고통받았던 독일 국민들의 결말을 생각한다면 페미나치의 결말 역시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나치시대를 살아온 마르틴 뇌묄러의 시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대는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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