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스포츠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1) 국내 축구를 바라보기 위한 안내서

2014년과 2018년 국가대표의 차이. 그리고 플랫 4-4-2

프로여행러 2017. 12. 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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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나마 이야기하는 거지만, 개인적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때 필자는 4-4-2를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인데


우선적으로 당시 엔트리에서 원톱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수 있는 선수가 없다는 점. 특히 박주영의 경우 당시에 경기력이 바닥을 기고있는 상황이었고, 김신욱의 경우는 당시 투톱에 적합한 공격수였지 원톱에 적합한 공격수는 아니었다. 즉, 사실상 원톱임무를 수행할수 있는 선수가 없었고, 그나마 투톱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인 김신욱정도가 최적의 옵션이었기 때문.


두번째는 4-4-2를 쓸만한 재료는 충분했다는 점. 이미 훌륭한 투톱파트너인 김신욱과 이근호가 있었고, 이 둘은 2012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하면서 파괴력 있는 공격력을 입증했다. 여기에 후방의 롱패스와 빌드업이 가능한 기성용과 킥력이 강한 정성룡까지 있었기 때문에 과거 토트넘이 보여준 '캐릭or 로빈슨 롱패스-> 베르바토프 어시스트 -> 로비킨 골' 과 같은식의 극강의 롱볼축구가 가능했다.



물론 이들이 롱볼축구에만 능했던 공격수들은 아니었지만 한국 국대에서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이미 울산현대의 우승으로 이게 국대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었고, 무엇보다 롱볼축구에 대한 재료는 물론(기성용, 정성룡), 이청용과 손흥민과 같은 윙쪽의 자원 역시 나쁘지 않았기 때문. 여기에 2012년 울산우승의 핵심이었던 김신욱과 이근호, 김승규와 곽태휘, 이용까지 있었으므로 충분히 가능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홍명보의 감독적 역량은 새로운 포메이션을 소화할만한 역량이 되지 않았고, 결국 대참사를 남기며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마감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력 포메이션은 플랫 4-4-2이다. 


발단은 손흥민의 활용법에서 시작되었다. 손흥민의 경우는 현재 국가대표에서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고 있는 선수이고, 무엇보다 엄청난 결정력과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 선수이다.


하지만 기존 우리나라의 포메이션이었던 4-5-1, 그리고 신태용감독이 선호하는 3-4-3에서 손흥민의 활용은 굉장히 난해했다. 


애초에 손흥민은 수비를 벗겨내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속칭 크랙형 선수라고 불리는 이런 선수들은 자신에게 붙은 수비를 벗겨내고 돌파해 공격찬스를 만들 수 있는 선수들을 말한다. 하지만 손흥민의 경우 이런 발재간이 뛰어난것도, 드리블이 뛰어난것도 아니기 때문에 반대쪽에서 도와줄 선수가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손흥민 스타일과 반대되는 크랙형 선수가 필요한 입장. 그것도 아니면 클래식 윙어 스타일의 선수가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우리나라 국가대표에서 반대쪽 윙어가 영 시원치 않았다는데 있다.


신태용호를 기준으로 손흥민 반대쪽 윙어를 살펴보면 이재성(이란전), 이근호(우즈벡전), 권창훈(러시아전), 남태희(모로코전) 등 신태용감독 역시 이 반대쪽 윙어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괜찮은 모습을 보였던건 러시아전 권창훈 정도 뿐이고 그나마도 손흥민과 스타일이 겹치는 점을 고려하면 적합한 인선은 아니었다.


여기서 신태용 감독이 힌트를 얻은 것이 바로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에서 사용했던 투톱 전술었다.



토트넘의 경우 지난시즌에도 간간히 손흥민과 케인을 투톱으로 쓰는 3-5-2전술을 활용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손흥민의 스타일을 보면 윙어보다는 공격수에 가까운 스타일을 보이고, 실제로 게임을 만들어가기 보다는 게임을 결정짓는 골을 만드는 선수이다. 어찌보면 손흥민에게 가장 어울리는 포지션이라는 이야기이고 이것은 결국 토트넘과 국대경기로 증명되었다.


문제는 알리도 에릭센도 케인도 없는 한국국가대표에서 투톱을 어떤식으로 안착시키느냐 하는 점. 이게 사실 핵심적인 과제인데 여기서 신태용 감독은 결단을 내린다. 토트넘에서 주로 활용되는 3-5-2가 아닌 4-4-2를 활용하기로 한것.



사실 이때 포메이션(4-4-2)은 예상이 된 부분이었으나 선수선택에 있어서는 여러모로 언론의 예상을 뒤엎는선택이었는데, 수비수에 김영권 대신 권경원이 들어온것을 시작으로 손흥민의 파트너로 이정협이 아닌 이근호가 선택되고, 무엇보다 기성용의 파트너로 전문 미드필더가 아닌 고요한이 선택된 것.


콜롬비아 경기전에서 보여준 이 선택은 그야말로 탁월했다. 고요한은 경기 내내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중 하나인 하메스를 묶어버렸고, 이근호는 손흥민이 공격할 공간을 헌신적으로 열어줬으며 손흥민은 본인의 결정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후 세르비아전 역시 비기긴 했지만 손흥민은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슈팅을 때리며 비긴게 아쉬울정도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한번도 써보지 않았던 4-4-2가 맞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손흥민이 뛸 공간을 벌어주는 선수가 있었고(이근호), 그 공격을 지원하는 선수들의 조합(이재성, 권창훈)의 조합이 좋았던 것이 가장 주요했다.



경기 초반부터 나온 장면이자 이날 경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보면 전방부터 이근호가 압박하기 시작하고, 이재성이 진행 루트를 막으며 바로 역습에 들어가게 된다.


이날 콜롬비아 전에서 이런식의 공격장면이 자주 나왔다. 이근호가 미친듯이 뛰며 압박하고, 수비수들을 교란시켰다면 이재성은 뒤에서 2차적인 수비를 담당하고 공격을 풀어주고 권창훈은 손흥민과 같이 뛰어들어가며 공격루트를 다양화 시켰다.


당연하게도 손흥민에 대한 수비적인 압박이 흔들릴수 밖에 없고, 그만큼 손흥민에게 찬스가 많이 가게 되었다(골은 탐욕이 작용했지만).


사실 손흥민의 수비력은 절대 좋은편은 아니다. 당장 포체티노 감독이 토트넘에서 윙백으로 쓰는 모험을 하다가 실패한게 좋은 예시이다. 하지만 이재성의 경우 중앙미드필더까지 두루 볼수 있을정도로 활동량과 수비가 좋은 편이고(공격적인 전개능력이 더 뛰어나지만), 권창훈 역시 원래 포지션이 중앙미드필더였기 때문에 수비력이 나쁘지만은 않다.


수비력이 좋은 이 두선수의 기용으로 인해 윙백의 활동에도 여유가 생기게 된다. 김진수 - 최철순 두 선수는 평가전에 처음 기용된 선수도 아니고 불과 몇달전에는 대표팀 비판의 핵심에 있었다. 하지만 수비부담을 덜어주는 윙어(이재성 - 권창훈)가 들어오면서 이들은 어느정도 수비부담을 덜고 공격에 가담하게 되는데, 특히 김진수의 경우는 공격력이 대폭 살아나면서 우리나라에 정확한 크로스라는 옵션을 늘려주게 된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좌측에는 수비력이 있는 윙어(이재성)와 공격력이 있는 윙백(김진수), 우측엔 돌파력이 있는 윙어(권창훈)와 수비력이 뛰어난 윙어(최철순)을 조합하면서 공격의 다양성과 더불어 수비의 안정화에도 성공하게 된다.


두번째는 고요한의 기용. 기성용이 월드컵에 나갈때마다 파트너가 계속 바뀌었는데, 남아공때 김정우 이후 마땅한 파트너가 없었던게 현실이었다. 그나마 아시안컵에서 활약한 박주호정도가 좋은 파트너였는데, 고요한을 이 위치에 넣으면서 기성용의 운용에 더 위력을 띄게 되었다.



물론 한참 부상중이었고, 팀에서 나오지 못했던 기성용의 컨디션이 올라온 부분도 있었지만 고요한이 수시로 압박하면서 하메스를 묶어버리면서 기성용의 수비적 부담을 덜어준 것이 주요했던 것.


이 두가지 점을 보면 한국 축구의 변화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과거 홍명보 - 슈틸리케로 이어졌던 점유율 축구적인 관점에서 전방에서부터 전범위에서 압박하는 압박축구로 다시 변모한 것이다. 한국축구의 핵심과 같던 이 압박축구가 전혀 새로운 포메이션에서 나왔다는건 아이러니한 점이다.



플랫 4-4-2에서 볼수 있는 지난 2014년과 2018년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감독의 역량 차이다.



홍명보호는 시작부터 끝까지 4-5-1 포메이션을 고집했다. 선수선발에서도 알수 있듯이 4-5-1을 기반으로 멤버만 두배로 뽑았다. 당연히 이 포메이션의 약점이 공략당하면(상대방의 빠른 역습) 플랜 B가 없다는게 약점이었고, 실제로 홍명보호는 그렇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신태용호의 다른점은 현재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 실제로 신태용호는 겨우 6경기 동안 4-5-1로 시작해서 3-4-3, 4-4-2로 세번의 포메이션 변화를 통해서 결국 가장 맞는 옷을 찾아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4-5-1만 고집했던 홍명보호와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하다.


가끔 온라인에서 홍명보호의 비호 논리를 보면, K리거 선수들을 썼음에도 제 실력을 발휘를 못해서 안뽑혔다는 논리가 있는데, 이건 어찌보면 정말 당연한 이야기다.


가령 이명주의 경우 2014년 당시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웠는데 수비형 미드필더에 박아놨고, 김신욱의 경우 원톱 경험이 거의 없었음에도 원톱으로 활용했다. 이 선수들이 제실력을 발휘 못하는게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이다.



월드컵때도 마찬가지. 우리가 알제리한테 대패하고, 알제리가 16강에서 독일에 석패하면서 '사실 알제리는 강팀이었다'는 식의 정신승리가 만연한데, 냉정하게 얘기해서 알제리는 전력상 우리보다 확고한 우위에 있던 팀은 아니었다. 당장 알제리는 월드컵 직전(2013년)과 이후(2015년)의 네이션스컵에서 4강은 커녕 8강진출에도 실패했고(예선탈락), 이번 월드컵도 나오지 못했다. 물론 아프리카의 전력이 상당히 평준화되어 예선과정이 강력한것도 고려해야된다지만 우리가 '강팀'이라고 할정도의 팀은 아니라는 것. 알제리가 강팀이면 우리가 2010년 꺾은 나이지리아는 뭐가 되는가.


당시 월드컵 조편성이었던 벨기에 - 러시아 - 알제리 조합은 우리나라가 받았던 역대급 꿀조였고(심지어 1시드를 받았던 2002년보다도), 이 상태에서 16강을 못간건 둘째문제고 1무 2패라는 말도안되는 성적을 낸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이번 월드컵 조편성을 보고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는건 신태용의 능력이다. 이미 K리그에 있을때부터 전술적인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었고, 연령별국가대표와 성인 대표팀에서도 그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최종예선때 보여준 답이없던 경기력과 아직도 히딩크를 부르짖는 팬들때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분명 능력이 있는 감독이다.


지금의 국가대표는 2014년에 비해 많이 약하다. 당장 멤버 면면만 보더라도 2014년엔 유럽리그에서 준주전으로 뛰던 멤버들이 무려 9명이었지만(기성용, 지동원, 구자철, 이청용, 박주호, 손흥민, 김보경, 홍정호, 윤석영) 이번 월드컵에선 기성용과 손흥민, 구자철, 권창훈이 전부이다. 물론 석현준과 황희찬까지 합류하면 더 늘어나겠지만, 2014년 월드컵 주전멤버 중에서 2018년 주전라인업에 남아있는 선수가 둘(기성용, 손흥민)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국가대표는 확실히 퇴보했다.


아마 이번 동아시안컵에서도 4-4-2만 고집하진 않을 것이다. 유럽선수들이 없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3백을 이용한 3-5-2, 3-4-3 역시 충분히 실험해 볼 것이다. 그리고 월드컵에서도 상대팀에 따라 신태용호의 전략은 바뀔것이다. 

이제 신태용에게 남은것은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치열한 죽음의 조만이 남았다. 개인적으로 16강을 예상하진 않지만 2014년 월드컵과는 다른, 최소한 졌지만 잘싸웠다는 모습을 보여줄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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